창작소설

만남-2

선한 나 2015. 10. 31. 15:07

아가씨는 조용히 목례를 한 다음 방을 나갔다. 순길은 잠시 동안 멍하니 옷가지가 걸려있는 벽을 바라다보았다. 젓가락으로 상을 두드리며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건넌방에서 들려왔다. 순길은 황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방을 나왔다. 그리고 사병들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려들었다. 그 아가씨에 대한 궁금한 의문점들이 잠시 동안 머릿속에 머물다가 이내 사라졌다.

 

"김중사, 그만 가지. 시장을 다들 봤는가 봐. 짐을 실어야 한다는구먼."

부처상사가 방을 나서며 할배에게 큰소리로 일렀다. 눈발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순길은 차가운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켰다가 내뱉었다. 희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머니의 하얀 얼굴이 잠시 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사라졌다. 순길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는 조금씩 흩날려 떨어지는 눈을 받아 삼켰다. 어머니가 주시는 하얀 쌀밥을 그렇게 순길은 받아먹고 있었다.

"이거, 눈이 많이 안 와야 할 텐데....... ! 모두들 서둘러. 눈발이 굵기 전에 어서 출발하자. 최 상병, 부인네들 다 탑승하셨냐? 애들더러 신속히 짐 실으라고 해. 서둘러!"

할배는 서둘러 운전병에게 지시하고는 잰걸음으로 차 주위를 돌았다.

"눈이 많이 쌓이기 전에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한바탕 쏟아질 것 같군. 최 상병. 고개까지만 좀 빨리 가야겠어."

부처상사는 부인네들이 걱정스러운지 얼굴이 굳어져있었다. 사병들이 숨이 턱에 차도록 열심히 트럭에 짐을 다 옮겨 실은 다음 모두 트럭에 올라앉아 가쁜 숨과 맺힌 땀을 씻고 있었다. 최 상병은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길을 선도해서 달려 나갔다. 순길은 철수와 다른 사병들을 쳐다보았다. 털썩거리는 긴 나무의자에 앉아 트럭이 요동치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모두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약간의 취기에 힘입어 주먹을 움켜쥔 채 머리 위로 힘차게 내지르며 가슴에 쌓인 울분과 향수를 쏟아내고 있었다. 순길은 뒤따라오는 트럭에 선임 탑승한 할배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트럭의 앞 유리창으로 쏟아져 부딪치는 눈송이를 와이퍼가 바쁘게 쓸어내고 있는 사이사이로 할배의 담배연기가 피어올랐다.

"순길아, 낼은 말이다. 아무래도 새벽거치 작업을 나가야 할 거 겉다. , 할배 떠들기 전에 미리 설상화하고 파카 좀 챙기 놓거래이."

철수는 할배중사의 찌푸린 얼굴이 마음에 걸리는지 창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순길에게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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