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10. 이별-1

선한 나 2016. 1. 18. 15:14

10. 이별

버스는 털털거리며 자갈길을 느릿느릿 기어갔다. 영옥은 숨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열린 차창 사이로 산 수풀 내음이 가슴 가득 안겨왔다. 산 나무 그림자가 길게 신작로에 드러누워 버스를 막아섰다. 산기슭 모퉁이를 돌아서 버스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차창 너머로 산 아래 조그만 동네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큰 강줄기가 동네 밖으로 휘돌아 흘러서 어디로인지 모를 먼 산 아래로 고리를 틀고 있었다. 영옥은 그 꼬리가 휘어져가는 곳을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종착지에 닿은 버스에서 내려 영옥은 길을 물었다. 오늘은 버스가 없다는 정류장 직원의 얘기를 듣고 영옥은 이곳에서 하루 잠을 잘 작정으로 식당을 찾아 길을 헤맸다. 버스 정류장을 조금 벗어난 곳에 조그만 시장 형성된 듯 한 곳에 장사집들이 길을 따라 듬성하게 늘어섰다. 그쪽으로 길을 잡아 조금 걸어간 영옥의 눈에 식당 간판이 몇몇 눈에 띄었다. 영옥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적당한 곳을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제법 큼직한 가방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는 영옥을 누가 불러 세웠다.

"아가씨, 식당을 찾아요? 그렇담 우리 집으로 오슈. 보아하니 막차를 놓친 것 같은데 이곳은 산골이라 차가 일찍 떨어진다우, 내 말 맞수?"

영옥이 들고 있던 가방에 눈길을 주고 있던 아줌마가 눈을 들어 말했다. 영옥은 말을 건네는 아줌마를 돌아보았다. 시장에서 찬거리를 보아오는 양 보따리를 양 손에 무겁게 들고는 턱짓으로 식당 쪽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을 붙였다.

", 그래요. 저녁을 먹을려구요."

영옥은 첫인상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이는 아주머니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섰다.

"거기, 짐은 의자 위에 올려놓으슈, 춘천에서 왔어요?"

아주머니는 손 닦을 물수건을 영옥에게 내민 뒤 식탁 앞에 서서 헝클어진 파마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

영옥은 강원도 쪽으로 방향을 정해 무작정 큰 길을 택했다. 오다 보니 서울과 춘천역을 거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춘천역에서 영옥은 방향을 쉽사리 정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제일 빨리 출발하는 버스의 표를 사서 그 버스에 오른 것이 그만 이곳으로 향하는 버스가 되어버렸다.

"그래, 무엇을 드실랴우? 우리 집에서 제일 맛있는 건 정식이라우."

영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자리에 놓인 가방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줌마는 쟁반에다 가져온 찬 그릇들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여옥을 향해 헤픈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종업원인 듯 한 아가씨가 김이 오르는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와 밥과 국이 담긴 쟁반을 가져다 무심하게 식탁 위에 올려놓고는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줌마는 그것들을 영옥 앞으로 가지런히 놓아주며 다시 말을 붙였다.

"우리 집 정식 중 된장찌개가 일미라우. 식기 전에 어서 드시우."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것이라는 물과 우유밖에 없는 영옥은 밤을 억지로 먹어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입맛이 통 자질 않았다. 된장에 비빈 밥을 억지로 반쯤 비우고는 그만 숟가락을 놓았다. 배는 허기져 있었지만 입은 모래를 씹은 듯 껄끄러웠다. 아줌마는 물 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다시 왔다.

"왜 이렇게 조금 드셨나? 시장해 보이는데 말이야. 음식이 아가씨 입에 안 맞는 모양이구먼. 저녁을 든든히 먹어야 잠을 잘 자지. 요렇게 먹고 어쩌나.......?"

"괜찮아요, 입맛이 없어서요. 얼마에요?"

영옥은 수저를 놓아버린 것이 자기 탓인 양 미안해하는 아줌마가 고맙게 느껴져 영옥은 아줌마를 향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영옥이 가방을 열어 계산을 하는 모양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줌마가 탁자 옆의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며 물었다.

"잘 방은 정했우?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요 건너 내가 잘 아는 여관이 있는데 그리로 가쇼. 방이 깨끗하다오. 내 동생이 해서 내가 잘 알지. 이건 장사가 아니라우? 어디까지나 소개지, 호호......."

아줌마는 제법 호들갑스럽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영옥을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그럼 그리로 가실려우?"

"그렇게 하지요 뭐."

", 종순아. 이 손님 저기 이모네 여관에 모셔다드리고 와라."

아줌마는 안쪽에다 대고 소리를 쳐서 사람을 불렀다. 조금 후에 아까 그 아가씨가 팔짱을 낀 채 슬리퍼를 끌며 나왔다.

"아주머니, 그냥 가리켜만 주세요, 제가 찾아볼게요."

"길이 어두워 잘못 찾을 거유. 더군다나 초행길인 듯싶은데......."

쟁반에 반찬을 영옥에게 날라주던 그 아가씨가 말없이 문을 밀고 나섰다. 영옥은 아가씨를 따라나서며 식당 문에 흰 페인트로 쓰여진 식당이름을 쳐다보았다. 그 이름 밑으로 =여종업원 구함=이라는 글이 아무렇게나 써져 있는 작은 종이가 한 장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종순이라는 아가씨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땅만 쳐다보며 앞서 걸었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얼마 안가서 희미하게 불빛이 바랜 여관 간판 앞에 아가씨는 섰다. 팔짱을 낀 손을 풀어 입구를 가리키던 아가씨는 휑하니 돌아서서는 가버렸다. 영옥은 자기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아가씨 등에다 대고 고맙다는 인사를 크게 했다. 아가씨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만 들었다 내렸다.

방은 따스했다. 영옥은 가방을 곁에 놓고는 펴놓은 이불 위로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몸은 피곤하여 천근으로 무너져서 늘어졌지만 잠은 쉬 오지 않았다. 눈을 감았다. 엄마의 노트가 생각이 났다. 영옥은 일어나 가방 속에서 곱게 보자기에 싸둔 엄마의 노트를 이불 위에 꺼내놓았다. 그러나 왠지 노트를 열어보기가 두려웠다. 엄마의 가슴 깊숙한 곳에 감추어둔 비밀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어 한참동안 영옥은 물끄러미 노트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노트 위로 떠올라 영옥을 쳐다보았다. 엄마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영옥은 노트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창작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 조우-1  (0) 2016.01.20
이별-2  (0) 2016.01.18
9. 억새의 노래  (0) 2016.01.18
마산 집-2  (0) 2015.10.31
8. 마산 집-1  (0) 2015.10.31